핸즈스토리

작성자 Admin 시간 2019-05-22 13: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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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동안 많이 다니기는 했어도, 올 첫 출장이다. 실무진들끼리만 가는 출장은 또 얼마만인가? 설레일만도 했다.

 

2주간의 준비기간이 끝나고 51일 마다가스카르를 향했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티켓 수 기준으로 60번 넘게 탔던 에티오피아항공이지만, 서울에서 아디스아바바 직항은 처음이다. 자정 출발 비행기는 비행 내내 어두운 하늘을 비행했고, 뭔가 새로운 풍경을 볼 것이라는 내 기대와는 다르게 아무것도 못 보고 이번 비행은 끝났다. 하지만, 도착한 마다가스카르 하늘은 비행기에서 멋진 풍경을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거짓말같이 높고 깊이 있는 푸른색 하늘로 나를 반겨줬다. ‘ 그래, 다시 왔다. 마다에~ ’ 2년도 안 되서 3번째 오는 마다가스카르. 프랑스 식민 지배로 도시의 건축 양식은 유럽식이고, 대륙의 소속은 아프리카이며 사람은 인도네시아 후손으로 인도양에 아직까지 개발이 거의 안 된 천연자연환경으로 참으로 적응 안 되는 신비로운 곳이다. 그리고 경제적 의미로 이 세상 어떤 나라보다도 가난한 곳이다.

 

이번 출장지는 안쿠파파이다. 비행기로 이미 스무 시간 왔는데, 다시 차로 열두 시간을 가야하는 곳이다. 그것도 미시령 고개 같은 길로 12시간이라니. 참으로 쉽지 않은 이동이다. 아직 한 번도 못 가본 동네에 가는 길이라서 그런가? 아직은 여전히 설렌다.

 

길은 고부랑 길의 연속이었고 험했지만, 한국에서 맛 볼 수 없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달려서 그런지 별 탈 없이 [안쿠파파]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이미 우리 숙소에서 [안쿠파파]를 안내해 줄 Safidi가 우리를 맞아준다. 처음 만나는데도 오랜 타지에 나갔던 자녀들이 수년 만에 돌아온 것을 반겨주는 부모님의 모습처럼 내내 웃으며 반갑게 맞아준다. 인상이 좋긴 했지만, 이 친구가 이렇게 모국인 마다가스카르와 어려운 환경에 있는 자국민들. 그 중에서도 어린이들과 약자들을 생각하는 친구인줄 처음에는 잘 몰랐다. 이 친구와 불과 일주일 있었지만 내 마음을 울리고, 많은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준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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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출장의 목적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사전 조사이다. 지역 전반적인 모습, 각 가정 방문을 통한 지역주민들의 실제 삶의 모습과 원하는 것들, 공무원을 통해 듣는 지역 수준과 함께할 수 있는 일들, 마을 리더들에게 듣는 주민들의 협동심과 습성 그리고 학교 방문을 통해 아이들의 교육 여건 등을 둘러보기 위함이다.

 

둘째 날부터 안쿠파파가 속해 있는 피아나란쵸아를 비롯해서 전반적으로 지역을 둘러봤다. 전통 마켓과 전망대 그리고 올드타운까지 둘러보는데, 그 동안 아프리카 곳곳에서 맨발은 많이 봤어도, 이렇게 도시에 있는 사람들까지 맨발이 많은 것은 처음 본다. 그 만큼 정말 가난한 지역이라는 이야기다. 어린 아이들은 물론, 무거운 수레를 미는 사람들도, 인력거를 끄는 사람들도 심지어 공사장에서 일 하는 사람들 중에도 대부분이 다 맨발이다. 그들은 열심히 살고 싶어도 일할 것이 없고, 열심히 살아도 하루에 주어지는 건 기껏해야 $1남짓이다. 한국으로 치면 광역시 정도 역할을 하는 중요 도시에 회사(법인)가 단 2개라고 한다. 천상 돈을 벌려면 막노동(인력거, 수레 밀기, 물통 배달, 공사장, 채석장, 가정부 등등)밖에 없는데 그 일마저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본인이 열심히 하겠다고 한들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어렵게 구해서 열심히 한들 내일이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이런 곳에서 가난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내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도 아이러니하게 올드타운의 외관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물론 그곳에 사는 주민이 아닌 잠깐 들렸다가 가는 나그네 입장이라서 그럴 수 있다. 순간 관광객모드로 동네를 둘러본다. ‘ 이렇게 보면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데~’ 세상은 항상 멀리서 볼 때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가까이서 보면 징그러워 보이는 법이고, 겉과 속은 다른 법이다. 이곳도 둘러보기 시작하니 다시 그들의 삶이 보인다. 공동 수도에 끝없이 늘어져 있는 물통들, 할 일 없이 나와 있는 젊은이들, 여기저기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 현지 주민의 삶은 이곳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다음 날 우린 다시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국제 NGO들을 방문했다. 여러 명이 순차적으로 지부장으로 파견 온 것도 아니고 혼자 이곳에서 20년 넘게 많은 활동들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들은 어떻게 멀고 먼 이역만리 땅에서 그 나라 사람들을 생각하며 모든 것이 열악한 그곳에서 살고 있는걸까? 사실 그 전날 밤에 대표님께서 나에게 한 질문이 있다. ‘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우리가 이렇게 먼 곳에 살고 있는 이들을 도와줘야 할까요? ’ 그에 대한 내 대답은 인연​’ 그리고 마음 속의 외침 입니다.' 라고 답했다. ‘대한민국 오천만 인구 중에 우리가 알게 되고 함께 일하게 된 것이 인연이듯이 그들을 만난다는 인연이 있는 것이고, 또 여러 가지 뉴스를 듣고 그냥 한 귀로 흘려보낼 수 있지만, 우리 마음에는 그들의 사연이 남아있고 우리 마음에서부터 그들을 도와줘야겠다는 것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울리기 때문이라고 답변을 했는데,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하신다. 나는 좀 더 생각해 보고 다시 답변을 드리겠다고 했었는데, 문득 이들이 이곳에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전반적인 조사를 하면서 이 곳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들을 보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생각했다.

 

각각의 회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나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가정방문조사를 시작했다.

나는 Safidi를 따라 25가정을 방문했다. 대부분의 집은 방 한칸에 침대가 하나 있는 모습이였고, 화장실은 공동푸세식 또는 집 주변 자연이 화장실이였다. 상수도가 연결된 집 또한 하나도 없으며, 가끔 우물이 있는 곳은 있었다. 그나마 5-6집에 한 집 정도는 전기가 연결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거의 모든 집에 남편이 없었다. 아이 낳은 후 남자가 떠나가서 소식이 연락 안 되는 집이 대부분이였다. 삶이 너무나도 힘들지만 아이가 없으면 여자구실 못 한다고 더욱 무시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은 안 하고, 남편은 없어도 아이는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특별한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 삶은 더욱 힘들 수 밖에 없다. Safidi는 모든 가정에 들어갈 때마다 환한 미소와 함께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 이 분들은 당신들을 도와줄 방법을 찾기 위해서 비행기로 하루, 그리고 다시 차로 12시간 걸려 이 곳에 오셨습니다. 이 분들이 이곳에 다시 오신다는, 또한 당신들을 도와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당신의 상황을 잘 이야기 해 주시면 이 분들이 그에 대한 보고서를 쓰고, 나중에 누군가가 저희를 도와줄 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Safidi의 말에 모든 분들이 너무 감사해 한다는 이야기다. 마다가스카르 정부도, 그리고 그 나라 어떤 기관도 자기들에게 관심을 가져줘 본 적이 없는데 한국에서부터 와서 이렇게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 준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고 하신다. 외국인이 자신의 작고 초라한 집에 들어와서 이렇게 여러 가지 질문해 준다는 사실이 상상도 못 해본 일이라고 한다. Safidi는 시종일관 미소와 함께 그들에게 하나하나 질문을 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상담도 해 준다. 모든 집에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집 사연을 듣다보면 Safidi 또한 마음이 더 안쓰러울 때가 있는 것 같았다. 이 집이 그러했다.

 

가는 곳마다 이런 조사를 와 준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외국인이 온 것을 신기해하며 모든 식구들이 조용히 나를 구경한다. 그런 그들 모습에 정말 순수함이 느껴지기에 나는 그들의 모습을 찍는다. 사진을 한 번씩 보여주자, 그 사진 우리가 받을 수 있냐고 다시 묻는다. 얼핏 생각했을 때 요즘은 아무리 저가폰이라도 카메라가 있어서 사진이 있을 법도 한데, 그들은 그 흔한 2G폰조차 없다. 집안에 라디오도 없는 집이 허다하고, 전자기기가 없는 것이 당연한데, 난 또 내 기준에서 착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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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장에 갔다. 이곳에 계신분들이 최빈민층이라고 한다. 제리통(20L) 한 통만큼 돌을 깨면 100원정도 받는다고 한다. 날카로운 돌들이 있는 채석장에서 일하시는 분들 역시 맨발이며, 장갑도 없고 유일하게 돌을 깨는 장비인 망치 또한 자루가 아주 형편 없다. 돌가루는 온몸에 튐은 물론 눈에도 계속 들어간다고 한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깨도 천원 벌기가 힘들다. 눈물나게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 그래도 이들은 힘들긴 하지만 일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좋다고 하며 감사하던 모습에 다시 한 번 머리가 멍하다.

 

길 것 같던 이주간의 사전조사 일정이 끝났다. 이전에 반복하던 생각들을 다시 반복한다.

왜 누군가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걸까? 그리고 어떻게 도와주면 이들에게 진정 도움이 될까? 출장 오기 전에는 순차적으로 장사를 위한 수레를 지원해 주거나 가축은행을 시행하면 도움이 될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그렇게 할 여건도 안 된다. 현지 주민들은 마이크로 펀드나 공동 가축 시설을 통한 낙농업을 하기를 원하는데, 이것 역시 어떤 방법으로 누구에게 선정해 줄 것인가와 혜택 받은 주민과 혜택 못 받은 주민간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할지 등 많은 부분에 고민이 된다. 우리의 도움 이전에 마을 공동체 스스로 많은 고민과 이야기가 오가야 할 것 같다.

도움에 대한 생각을 할 때 항상 우리가 지원을 끊었을 때 분명 우리가 지원해 주기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방법을 생각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에 많은 고민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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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더 라이트 핸즈 황현룡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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